이 브랜드를 고른 이유
2017년, 텀블벅을 스크롤하다가 멈춘 적이 있어요. 스니커즈 한 켤레를 파는 페이지였는데, 제품 사진 아래에 원가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소재비 얼마, 인건비 얼마, 마진 얼마. 신발을 사면서 그 신발이 얼마짜리 재료로 만들어졌는지를 읽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마치 식당에서 메뉴판 대신 레시피를 건네받은 기분이었습니다.
마더그라운드를 첫 글의 주제로 고른 이유는 단순해요. 오랫동안 좋아해 온 브랜드이기 때문입니다. 티셔츠, 모자, 신발까지 여러 제품을 소장하고 있지만, 제가 진짜 좋아하는 건 이 브랜드가 말하는 방식이에요. 과장 없이, 숨기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그 방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한번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마더그라운드는 누구에게 말하는가
물건을 고를 때 뒤집어보는 습관이 있어요. 라벨을 읽고, 원산지를 확인하고, 소재를 만져봅니다. 마트에서 과일을 고를 때도, 옷을 고를 때도. 가격표만 보고 사는 게 아니라, 그 가격이 어디서 온 건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마더그라운드가 말을 거는 건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리처드 탈러, 잭 넷치와 함께 연구한 결과가 떠올라요. 소비자는 마진을 늘리기 위한 가격 인상은 ‘불공정’으로 느끼지만, 비용 상승에 따른 인상은 ‘납득’한다는 것. 마더그라운드의 독자는 바로 이 납득의 구조를 원하는 사람들이에요. 싼 물건이 아니라, 가격의 이유를 보고 판단하고 싶은 사람들.
이 브랜드가 제품을 설명하는 방식을 보면 더 선명해져요. 수사 대신 소재의 이름, 생산지, 단가가 먼저 나옵니다. 브라운브레스 시절부터 이어진 스트리트 감각은 디자인 곳곳에 남아 있어서, 과시보다 자기 취향을 중시하는 층과도 맞닿아 있고요. 결국 마더그라운드의 독자는 “좋은 물건을 사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좋은 물건이 왜 좋은지 알고 싶은 사람”에 가깝습니다.
반복되는 핵심 메시지 — 투명한 가격 공개
마더그라운드가 론칭 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메시지는 하나예요. 투명함. 이 브랜드는 스스로를 “Three Rules”로 정의하는데, 이 세 가지를 읽다 보면 경영 철학이라기보다 하나의 태도 선언처럼 느껴집니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고 직접 디자인하며 공정하게 판매한다는 Mind. 제조 비용, 가격의 이유, 만든 사람까지 모두 공개한다는 Open Info. 유통 수수료가 판매가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공식 온라인스토어만으로 유통 단계를 없앤다는 Way to Sell. 셋을 나란히 놓으면, 이건 사업 전략이 아니라 “우리는 이렇게 살겠다”는 문장에 가까워요.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대부분의 브랜드가 벽지와 마감재로 공간을 꾸미는 동안, 마더그라운드는 노출 콘크리트처럼 골조를 그대로 드러내는 쪽을 택했어요. 가격표에 생산비, 운영비, 마진, 세금, 임금까지 적어 넣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됩니다. 별도의 카피가 필요 없어요. 숫자가 곧 메시지입니다.
마더그라운드 톤앤매너 — 골조가 드러나는 말투
동네 커피집에 갈 때마다 눈이 가는 게 있어요. 메뉴판에 원두 이름과 산지, 로스팅 날짜만 적혀 있고 “풍부한 아로마”나 “깊은 바디감” 같은 수식이 하나도 없는 곳. 마더그라운드의 제품 페이지를 읽을 때 떠오르는 건 바로 그런 말투예요. 이근백 대표는 브랜드를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본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마더그라운드라는 사람이라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를 기준으로 제품을 기획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인지 이 브랜드의 콘텐츠에서 “최고의”, “압도적인” 같은 수식어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 자리를 소재의 이름, 제조 공정의 단계, 색상의 한글 이름이 채우고 있어요. 롤랑 바르트의 표현을 빌리면, 이건 “의미의 닻”을 내리는 방식에 가까워요. 이미지가 여러 뜻으로 읽힐 수 있을 때, 텍스트가 의미를 하나로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 마더그라운드가 색상명을 누룩, 비자림, 자작나무, 벚꽃, 김 같은 한글 관용색명으로 쓰는 건, 범용 영문 컬러코드 대신 자기만의 언어로 의미를 고정하는 행위예요. 색상 하나를 부르는 이름에도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브랜드”라는 태도가 심어져 있습니다.
제조자 페이지도 같은 결이에요. 대부분의 브랜드가 “메이드 인 코리아” 한 줄로 끝내는 자리에, 마더그라운드는 만든 사람의 이름과 직책, 얼굴까지 공개합니다. 신발은 부산 삼영시스템, 가방은 아미, 의류는 라이클리후드와 대흥의류. 건축으로 치면 시공사뿐 아니라 목수와 배관공의 이름까지 건물 입구에 새기는 셈이에요. “누구와 일하는지도 숨기지 않겠다”는 태도, 그것이 곧 이 브랜드의 톤입니다.
마더그라운드 콘텐츠 전략 — 유통이 아니라 동선을 설계하다
이 브랜드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판매 채널 자체를 콘텐츠로 만들었다는 점이에요.
‘보부상’에서 이름을 딴 전국 순회 팝업 매장, 보부스토어가 대표적입니다. 2026년 3월 기준 70회를 돌파했어요. 서울, 대구, 부산, 제주까지. 고정 매장에서 기다리는 대신 고객이 있는 곳을 직접 찾아갑니다. 장이 서는 날 보따리를 싸서 마을로 들어오던 보부상처럼요. 이건 판매 방식인 동시에, “우리가 당신을 찾아갑니다”라는 메시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콘텐츠이기도 합니다.
신발장이라는 상설 체험 공간도 같은 결이에요. 제주, 홍대, 성수, 단양의 카페나 편집숍에 놓인 이 공간에서 직접 신어보고 주문서를 작성합니다. D2C 브랜드가 흔히 부딪히는 “직접 만져볼 수 없다”는 한계를, 매장을 열지 않으면서도 자기 방식으로 풀어낸 셈이에요.
미국의 에버레인(Everlane)이 “Radical Transparency”를 내걸며 원가 공개로 성장한 사례와 궤를 같이하지만, 마더그라운드는 여기에 보부스토어와 신발장이라는 자기만의 장치를 얹었어요. 온라인에서 숫자로 보여주는 투명함을, 오프라인에서는 발로 찾아가는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잘한 점 — 투명함을 운영 구조에 심었다
“정직합니다”라고 말하는 브랜드는 많아요. 그런데 마더그라운드를 오래 지켜보면서 느낀 건, 이 브랜드에서 투명함은 캠페인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운영 규칙이라는 점이에요.
가격 공개는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모든 제품에 적용되는 규칙이고, 제조자 공개는 상시 운영되는 페이지이고, D2C 판매는 창업 이래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원칙입니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이 떠올라요. 카버가 단편에서 불필요한 문장을 전부 들어낸 것처럼, 마더그라운드도 브랜드 운영에서 ‘숨기는 것’을 전부 들어냈어요. 남은 건 골조뿐인데, 그 골조가 오히려 이 브랜드를 단단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콜라보레이션 방식도 눈여겨볼 부분이에요. 코오롱스포츠와의 리사이클 스니커즈, 에어로케이 항공과의 승무원 운동화 등 여러 협업을 진행하면서도 톤이 흔들리지 않아요. 협업을 “평소 우리가 할 수 없던 것을 할 기회”로 정의하는 태도가, 협업마다 같은 원칙이 반복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쉬운 점 또는 확장 가능성
한 가지 아쉬운 건 이 브랜드의 이야기가 도달하는 반경이에요. D2C 모델의 특성상 이미 마더그라운드를 아는 사람에게는 강한 충성도를 만들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처음 닿기까지의 경로가 길어질 수 있습니다.
보부스토어와 신발장이 그 간극을 메우고 있지만, 디지털 콘텐츠 측면에서의 접점은 더 넓어질 수 있을 거예요. 가격을 산출하는 과정, 제조자와 함께 작업하는 현장, 보부스토어를 준비하며 짐을 싸는 뒷이야기. 이런 것들이 콘텐츠로 풀린다면, 브랜드의 이야기가 한 겹 더 두꺼워질 수 있을 겁니다.
이 브랜드에 어울리는 콘텐츠 방향
마더그라운드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콘텐츠는 “과정을 보여주는 글”이에요. 이미 결과물의 투명성은 완성되어 있으니, 그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같은 톤으로 풀어내는 겁니다. 한 켤레의 스니커즈가 기획에서 출시까지 어떤 단계를 거치는지, 보부스토어 한 회가 열리기까지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완공된 건물 사진만 보여주는 건축사무소와, 기초 공사부터 상량까지의 기록을 남기는 건축사무소가 있다면, 마더그라운드는 후자에 더 가까운 브랜드예요. 과정의 기록은 이 브랜드가 이미 갖고 있는 자산을 콘텐츠로 한 번 더 활용하는 방법이 됩니다.
이 글이, 좋은 물건을 정직하게 파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콘텐츠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기를 바랍니다.